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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헌정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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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민주화 선언과 3선 출마 선언 === 1987년 12월, 휴전 뒤에도 유지되던 계엄의 해제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시작된 [[12.23 민주화운동]]이 3주 넘게 이어지며 국정이 마비 직전에 이르자, 1988년 1월 10일 집권 [[민주공화당(루이나)|민주공화당]] 대표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내정되어 있던 [[토머스 J. 윈필드]]가 [[1.10 민주화 선언]]을 발표했다. 계엄의 즉시 해제, 직선제 개헌 수용, 정치범 석방, 언론검열 폐지, 4.13에 대한 진상 조사가 골자였다. 선언은 정권 내부에서도 예상 밖의 사건이었다. 베인브리지는 공개적으로 선언을 부정하지 않았고 1988년 2월 계엄을 형식적으로 해제했으나, 비상조치 조항의 상당수는 개별 법령으로 이관되어 그대로 존속했다. 직선제 개헌안은 이후 1년 동안 정부 발의도, 국무회의 상정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헌 협상은 실무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지연되었고, 1988년 하반기부터는 정부·여당 안에서 "임기 연장이 아니라 개헌 완수를 위한 임기 유지"라는 논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12월 2일, 베인브리지는 대통령궁 기자회견에서 헌법 제70조와 부칙 제3조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3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 "루이나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전후 재건도, 개헌도, 질서의 회복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선에서 돌아온 청년들에게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돌려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나라에 저의 헌신이 한 번 더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헌법은 시대와 역사 앞에 유연해야 합니다." 발언은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야당은 즉각 출마 자격 부존재 확인과 사퇴를 요구했고, 법조계와 대학가에서 규탄 성명이 잇따랐다. 윈필드는 당 대표직을 사퇴하며 "나는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짧은 성명만을 남겼고, 민주공화당은 사실상 분열 상태에 들어갔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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